올해는 개인적으로 참 바쁜 해이다. 잠 시간을 줄여가며 티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 와중에도 축구와 관련된 예능프로는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다. 어릴 때부터 축구경기 보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사실 축구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올해 축구 예능을 보면서부터이고, 다른 나라와의 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에 더 열을 올려온 것 같다. 그래서 밤 시간에 축구 경기가 있을 때면 안 자고 혼자서 열심히 응원하곤 하는데, 야심한 시각에 골이 들어갔을 때 적막을 깨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환호성이 나는 참 좋다. 그럴 때 느껴지는 유대감이랄까? 그런 게 참 좋은 것 같다.
오늘은 카타르 월드컵 우리나라 예선 경기가 있는 날이다. 우루과이와의 경기가 10시부터 있게 되는데, 저녁부터 티브이에서는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와 관련된 장면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때의 붉은 악마들을 보면서 저 당시 나는 몇 살이었는지 생각해 보니 20대. 참 풋풋한 나이였다.
그런데 난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20년이나 지났는데도 신기할 정도로 생생하다. 그때 나는 서울에서 일산으로 가는 버스에 타고 있었다. 난 뒷자리에서 몇 개 앞쪽 좌석에 앉아있었는데, 월드컵에 동참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많이 힘들어하고 있던 때였다. 내 눈에는 거리응원을 위해 도로를 가득 메운 붉은 악마들의 역동적인 모습마저도 음소거 상태로 비칠 정도로 말이다.
버스에서 라디오로 중계가 되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점점 흥분해 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나는 모든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도로를 가득 메운 붉은 물결을 뚫고 버스는 천천히 달려갔는데 마치 모세의 기적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지나가는 모르는 차 위에 올라타기도 했고, 급기야 내가 탄 버스를 수백 명은 될 것 같은 사람들이 에워싸고 버스 벽면을 두드리면서 대한민국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마치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탄 버스를 대하듯이 사람들은 우리 버스 안의 사람들에게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나도 모르게 창밖 사람들의 환호성에 답례를 하듯 손을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러다가 주변을 봤더니 버스 기사는 물론 같은 버스를 탄 승객들이 죄다 나처럼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 있다는 게 웃음도 나고... 손을 흔들다가 동승한 승객들과 눈이 마주쳐 같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 2002년 월드컵 특집 프로를 보다가 스무 살 어리던 그때의 나의 모습이 문득 떠오르면서 모든 게 힘들었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워졌다.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면 난 아마도 그 버스에서 당장 내려 붉은 물결 속에 합류할 것 같다. 젊은 날의 고뇌는 언젠가는 잔잔해지는데 어느 한날의 추억은 수십 년이 흘러도 두고두고 남으니 말이다.
오늘은 어떤 결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들과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응원해 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20년 전 기적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의 희열을 오랜만에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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